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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대문집

소설

by 안노27 2024. 5. 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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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 초록대문집_1화

입학하는 서영이 |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창문을 보니까 아직도 밖은 캄캄했다. 로사 언니네 이모가 사 준 클로버 빨간색 책가방을 끌어안고는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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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대 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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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는 서영이

 

새벽 일찍 깼다. 옆집 아주머니가 사 준 클로버 빨간 책가방을 끌어안은 채. 입학식 날 입으라고 시내 작은 아버지는 붉은 코드를 한 벌 사다 주었다. 넓은 나팔바지에 새 운동화까지.

아직 얼굴이 퉁퉁 부은 어머니가 옷을 천천히 입혀 주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방 한가운데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달력을 보았다.‘2’라는 숫자에 빨간 색연필이 동그랗게 먹처럼 입혀있었다. 엄마가 그랬다. 입학식 날이니까 잊지 말라고.

 

희덕이 언니는 올해가 ‘1978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197832.

 

오늘은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두 달 전에 막내 동생을 낳았다. 어른들 말로 아직 백일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도 자주 아프다. 낮에는 이제 나하고 놀아 주지도 않고 재민이도 잘 돌보지 않고 간난 아기만 안은 채 종종 잠이 들었다. 따분하고 심심했다. 아침을 먹고 방문을 나서려는데 아랫목에 누워 아직 자고 있는 재민이가 눈에 밟혔다. 나도 없으면 하루 종일 심심해 어떻게 하나. 나중에 옆 집 만화가게에서 뻥튀기나 사 줘야겠다. 아버지는 벌써 마루에 걸터앉아 구두를 신고 있었다. 출근할 때보다 더 멋지다. 할머니 집 마당에 서 있는 오래 된 나무 결처럼 촘촘하게 여러 가지 색이 섞인 양복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대문을 나서려니까 옆 방 식구들과 대문간 식구들, 외사촌 언니들이 다들 한 마디씩 했다.

 

- 서영이, 집 찾아오겠나?

- 학교 가면 선생님들 무서울 긴데....우짜노!

- 꼬맹이가 벌써 입학을 다하네!

 

초록 대문 집에 이사 온 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문간 식구를 빼고는 전부 원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옆 방 식구들은 아버지 친구네였고 외사촌 언니들도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비위가 상했다. 다들 나를 꼬맹이, 아기로 아직 부르고 있었다. 벌써 여덟 살인데. 나는 샐쭉해서 아버지 손을 잡고 뒤도 안보고 대문을 열었다. 뒤로 어머니의 긴 여운이 들렸다.

 

- 조심해서 갔다 와라!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서 내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골목 어귀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 한 갑과 알사탕 세알을 샀다. 아버지가 알사탕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 우리 서영이. 인제 학생이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인 것이 여간 기쁘지 않은가 보았다. 아버지 친구들은 장가를 일찍 가서 다들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우리 집만 늦다. 옆 방 아버지 친구 중대장 아저씨네만 해도 언니 오빠들이 전부 중학생 고등학생에 취직한 언니도 있다. 그래서 옆 방 아저씨 아주머니가 나를 더 예뻐한다. 나는 사탕 한 알을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나머지 두 알은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재민이 가져다 줄 거다.

 

집을 둘러싼 주택가를 지나 아버지는 큰 하천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나는 처음 와 보는 길이었다. 하천을 지나니 길이 나오고 주변에 가게와 집들이 있었다. 이제 낮은 기차 터널이 나왔다. 아버지는 굴다리라고 했다. 굴다리 안은 어두웠다.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그 때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 서영이, 나중에 혼자 집 찾아오겠나?

 

갑자기 어젯밤 희자 언니 말이 떠올랐다.

 

- , 내일 고모부가 니 데리고 입학하러 가서 버리고 올 긴데. 우짤래?

- 아이다!

 

눈을 부릅뜨며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짠가 보았다. 앞 집 무당집 옆방에 사는 형식이도 며칠 전에 만화방에서 달고나 하다가 그랬다.

 

- 입학식이 뭐 좋노? 어른들이 우리 버리는 날인데!

 

큰일 났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갔다 오라고 했을까? 그러면 입학식에 갔다가 집을 못 찾아가는 아이는 버리는 것인가 보았다. 그 때 굴다리를 벗어났다. 다시 환했다. 넓은 밭이 보였다. 저 멀리 높은 건물이 보였다. 그 위에 뭔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긴장했다. 버리고 가 버리면 나 혼자 이 먼 거리를 어떻게 찾아가나? 머리로 다시 길을 더듬었다. 밭에서 굴다리, 굴다리에서 골목, 골목에서 큰 다리, 거기서... 집으로 가는 골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울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넓은 길옆으로 유채꽃이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길로 접어들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 한 명씩을 손잡고 높은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와 가는 아이는 없었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두려웠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갈까봐, 지나온 저 긴 길을 혼자 찾아가지 못할까봐. 그런데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은 마냥 웃고 뛰고 떠들고만 있다. 바보 멍청이들. 저희는 집이 나보다 더 가까워 찾아가기 쉬운가 보았다. 부러웠다. 아기가 태어나서 어머니가 더 힘드니까 아마 나를 학교에 버리려는가 보았다. 나는 거의 울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그러다 건물 입구에서 멈추었다.

 

- 서영이, 무섭나?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할 긴데 머가 무섭노?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안으로 향했다. 그 곳이 학교라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다. 나는 학교라는 곳 운동장에 발을 들였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이와 어른들이 한데 엉켜 손이라도 놓으면 절대 찾지도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 왼쪽 가슴에 달린 손수건 위 녹색 체크무늬 깃발을 보면서 같은 무늬를 찾으라고 했다. 저 멀리 깃발 열 개가 보였다.

나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녹색 체크무늬 깃발 아래로 가서 섰다. 펌 머리를 한 눈이 움푹 들어간 여자가 그 깃발을 잡고 있었다. 그 아래로 아이들이 몇 보였다. 아버지는 내게 그 사람이 담임선생님이라고 했다. 그게 뭐냐니까 일 년 동안 나를 가르칠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저 여자가... 그러면 내가 집을 못 찾아가면 저 여자와 여기 학교라는 데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갑자기 그 여자가 마땅치 않았다. 운동장은 시끄러워 정신이 없었다. 가운데 높은 단상 위에서 남자 한 사람이 확성기로 더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 학부모님들은 이제 아이 옆으로 물러나 서 주십시오!

 

아버지가 내 손을 빼려 했다. 나는 놀라 잔뜩 겁을 먹고 양 손으로 아버지 손을 움켜잡았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그런데 깃발 든 여자가 앞에서 다시 소리를 질렀다.

 

- 학부모님들, 옆으로 서 주세요!

 

아버지는 또 내 손을 빼려 했다. 나는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사람들에 밀려 손을 놓쳐 버렸다. 아버지가 사라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었다. 아주머니들 사이에 아버지는 없었다.

 

- , 여러분! 앞을 보세요!

 

여자가 떠들었다. 아버지가 없다. 나는 갑자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 아빠! -!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이건 생존이다. 절대 아버지가 운동장에서 나가면 안된다.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목청껏 울어댔다.

갑자기 운동장이 조용했다. 깃발 든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단상 위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머니들 틈 속에서 어느 새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내 옆으로 다가왔다.

 

- 아빠 여기 있다! 울지 마라!

 

나는 아버지 손을 다시 꼭 잡았다. 여자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내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줄을 서서 다녔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보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절대 아버지가 나를 버리지 못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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