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보낸 택배함을 열어보고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세시대 어느 귀족의 서재 오래된 마호가니 책장 위에나 있을 법한
깃털 달린 펜대였다.
거기다가 애교처럼 작고 앙증맞은 잉크병도 따라 들어있다.
근 일 년째 머리카락 쥐어 뜯으며 변변한 단편 한 편을 못 쓰고 있는 제 어미가 불쌍했던지
아니면 이러다가 정말 우리 집 재정이 바닥나 버릴 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위협인지
아무튼 뭐라도 좋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 이런 멋진 선물을 받았으니!!!
내가 펜으로 글을 쓴 것은 일년 쯤 전부터다.
도저히 머릿 속이 뒤엉켜 혼자 쩔쩔 매다가 어느 날 문득
서랍 속에서 나뒹굴던 나무 펜을 발견했다.
그것도 딸 아이가 오래 전에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었다.
딸 아이는 내가 펜으로 뭔가를 쓸 때 그 소리와 느낌을 아주 좋아했다.
그림 그리듯 글을 쓴다고 했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생각했다.
떠오르는 대로 문장을 적어내려가 보았다.
어떤 의도도 욕망도 가식도 거기에는 근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흰 백지 20장을 몇 시간 동안 고요히 적어내려갔다.
그 때부터 내게 펜은 막힌 머리를 뚫어주고 답답한 가슴에 시원하게 구멍을 내 주는 소중한 벗이 되었다.
제 어미 속을 꿰뚫고 있는 딸 아이가 이번에도 아주 영민한 짓을 벌인 것이다.
뾰족한 펜에 잉크를 찍어 흰 종이에 몇 자 적을라치면 그 부드러운 깃털이 살랑살랑댄다.
아!
기적의 향이 그윽하다!
힐링하우스 한옥_여백의 미 (0) | 2024.05.12 |
---|---|
남쪽 바다 진해 보물찾기 (1) | 2024.05.07 |
기적에 대한 담론 사물-몽땅연필 (0) | 2024.05.07 |
골목길 (2) | 2024.05.07 |
양씨네 양과자점 (0)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