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양씨네 양과자점

에세이

by 안노27 2024. 5. 7. 06:19

본문

 

이건 내~마음! 이건 아가씨 꺼! 이건 덤!!”

 

양 사장이 높은 톤으로 노래 부르듯 외친다.

양 사장 네 양과자점 앞 가판대 위에 가지각색의 양과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오일장이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나 양 사장 네 양과자점 앞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뱃살이 적당하게 나온 토종 된장국 낮 빛의 양 사장은, 손님들 사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낭랑한 목소리만 사람들 틈으로 울려 퍼진다. 양 사장 말솜씨와 소리 가락에 맞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에 과자를 넘치게 한가득 담는다. 이것저것 전부 맛있게 보였다. 입 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양 사장은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과자를 집어 주었다. 막 퍼 주었다. 오른손으로는 소쿠리에 과자를 담으면서 왼손으로는 또 다른 손님들에게 과자를 집히는 데로 건네고 있었다.

 

많이많이 집어먹고 작게 작게 담아~!!!”

 

그 소리에 사람들은 웃는다. 그렇다고 마구 집어먹는 사람은 없다. 달콤한 양과자 한 알을 입 안 가득 오물거리면서 집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소쿠리에 한 가득 담아 채웠다.. 양 사장의 유쾌한 입담과 달콤한 입맛에 그 순간만은 마냥 행복한 것이다.

 

먹어 봐! 둘이 먹다 ~ 하나 기절해도~ 몰라! 나는~ 몰라!”

 

알록달록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양과자. 상투모양 과자, 젤리 과자, 갓 구워낸 땅콩과자, 다양한 전병들. 사람들은 봉지에 과자를 가득 담아 안고 나온다.

 

늙은 언니! 맛나게 먹고 다음 장 날 봐!”

 

은발을 한 할머니가 틀니를 허옇게 드러내며 가을 햇살아래 환하게 웃는다. 봉지에 든 양 과자를 신주단지처럼 품에 안고 나오려는데 양 사장이 얼른 할머니 입 안에 상투과자 하나를 집어 넣어준다. 양 볼이 깊게 패이며 두 눈이 하회탈처럼 오므려진 채 할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오물거린다. 사람들 머리 위로 양 사장 목소리가 파도처럼 공기 중을 후리치며 떠돈다.

 

작년만 해도 오일장에 양과자 파는 장사꾼이 두 명은 더 있었다. 그런데 양 사장 장사 수완에 다들 자리를 못 붙이고 다른 장으로 가 버렸다. 갈수록 인기가 많아지자 그는 가게 터를 하나 마련했다. 대형 오븐을 설치하고 하루 종일 과자를 구워냈다. 장이 서지 않는 평일에는 주문 과자를 만들었다. 양과자를 파는 장사꾼들 사이에서도 양 사장은 이미 솜씨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팔았다. 그래서 장날이면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과자를 한 주먹씩 퍼 주어도 괜찮았다. 직접 양과자를 굽지 않는 대부분의 장사꾼들은 더 싸고 더 맛있는 양 사장 네 과자를 찾았다. 그래서 양 사장은 평일에 더 바빴다.

 

양 사장은 오십이 조금 넘었다. 스포츠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가 더 단단하게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처음 열여섯 살 초겨울에 도시로 나왔다. 밥벌이를 할 기술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도시의 작은 양과자점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낮에는 과자 만드는 것을 배우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때부터 삼십년을 과자만 구워왔다. 이제는 눈 감고도 오븐 속 냄새만으로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알아낼 정도다. 그런데 그는 한 번도 결혼을 한 적이 없다. 때를 놓쳤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가겟방에서 혼자 지낸다. 가게 문이 닫히고 늦은 저녁이 되면 혼자 장터를 한 바퀴 돌아본다. 마치 동네 방범 요원 같다. 그럴 때면 언제나 뒷짐을 쥔 손에 과자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과자 한 줌을 주머니에 따로 넣는다. 지나가는 배고픈 강아지에게도 한 개 던져주고 도둑고양이에게도 한 개 던져준다. 그리고 봉지는 동네 입구에 있는 노인정 문 앞에 걸어 둔다. 밤이슬 맞지 않게 잘 매서 걸어 둔다. 다 돌고 들어오면 초저녁이 훨씬 지난 시각이다. 가게 안은 어두웠다. 아마도 많이 외로워서 여기를 떠나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외로워서 사람이 그리워 처음 장터에 나와 과자를 팔기 시작했고, 북적거리는 이 장터가 좋아 가게도 장만했고 이제는 정말 여기를 떠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늦은 밤, 그는 냉장고를 열어 내일 쓸 반죽들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방에 들어간다. 그것이 실제적인 퇴근시간인 셈이다.

 

내일은 오일장이다. 오븐에 과자 굽는 냄새가 온 시장에 진동을 할 것이다. 그 즈음이면 양 사장이 외쳐대는 맑은 소리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질 것이고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아당기며 가게로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롭지 않았다. 자기 과자를 먹으러 와 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자기 입담을 들으며 맑게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힐링하우스 한옥_여백의 미  (0) 2024.05.12
남쪽 바다 진해 보물찾기  (1) 2024.05.07
깃털 펜에 대하여  (0) 2024.05.07
기적에 대한 담론 사물-몽땅연필  (0) 2024.05.07
골목길  (2) 2024.05.07

관련글 더보기